분트 [책과 삶]유럽보다 빛났다, ‘교역의 시대’ 동남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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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언어와 문화가 매우 다양해 하나로 묶기가 쉽지 않다. 번역자인 박소현 번역가에 따르면,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동남아시아를 하나의 지역으로 묶어보려는 시도조차 미미한 상황에서 저자는 ‘닥치는 대로’ 사료를 읽고 연결점을 찾아내 가능할 법한 더 큰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방법을 택했다”.
저자가 복잡다기한 동남아시아사를 관통하기 위해 찾아낸 주제는 ‘교역’이다. 저자는 “천혜의 물길을 통해 교역으로 연결되고 국제 교역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역동적인 세계”였던 15~17세기 동남아시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거대 시장인 중국과 인도, 중동과 유럽을 잇는 해상 무역로에 자리 잡은 동남아시아의 교역은 ‘바람’을 타고 이뤄졌다. 인도양의 계절풍이 뱃길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줬다. 계절풍을 타고 도달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바람 아래의 땅’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동남아시아는 로마 시대와 중국 한나라 시대부터 교역이 발달했으나 15~17세기 사이에는 교역의 비중이 특히 커졌다. 후추, 정향, 육두구 등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향료들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1620년대 유럽 국가들이 연간 사들인 향료는 정향 300t, 육두구 200t, 메이스 80t에 달했다. 17세기 포르투갈, 네덜란드, 잉글랜드, 스페인은 교역 과정에서 식민지 아메리카의 은을 대량으로 동남아시아로 가져왔는데, 대량의 은 유입은 동남아시아에서 도시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됐다.
16~17세기 동남아시아 주요 도시 인구는 당시 서유럽 주요 도시보다 인구가 많았다. 저자의 추정에 따르면 16세기 아유타야는 26만명, 브루나이는 16만2000명으로 추정되는데, 비슷한 시기 런던(10만명)보다 많은 규모다. 17세기 중반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탕롱, 아유타야, 마타람의 인구는 15만~20만명으로 추정된다. 아체, 마카사르, 반튼, 낌롱 등은 17세기 중반 약 10만명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 중반 동남아시아의 대도시 거주자 비율은 5%로, 인도 무굴제국이나 중국보다는 낮았지만 당시 서유럽보다는 높았다.
여성이 사회생활에서 타 문화권에 비해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폴리네시아, 마다가스카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포함하는 오스트로네시아 사회에서는 여왕이 드물지 않았다. 14세기에 건국된 인도네시아 보네 왕국은 역대 서른두 명의 왕 중 여섯 명이 여왕이었다. 특히 교역이 꽃을 피웠던 15~17세기 동남아시아에서는 여성이 왕좌에 오른 사례가 많았다. 현재 태국에 속하는 파타니에서는 100년 이상, 수마트라섬 북부 아체에서는 58년간 여왕들이 연속해서 통치했다. 여성들은 상인으로 활동한 것은 물론이고 외국과 협상을 위한 특사로도 활약했다. 수마트라나 필리핀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문해력이 뛰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저자는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이 교역에 친화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남성은 높은 지위 의식과 전장에서의 명예를 지킬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재산을 낭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시장을 움직이는 힘을 이해하고 면밀하게 협상하며 자본을 지키는 것은 여성의 일이었다. 대체로 여성 통치자에 대한 이러한 기대는 배반당하지 않았다.”
번영했던 동남아시아는 17세기를 거치며 쇠락했다. 1621년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전쟁, 서유럽을 덮친 흉작으로 유럽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은 생산량이 급감했다. 중국의 동남아시아 무역도 중국의 정치적 혼란으로 침체에 빠졌다. 활황기에 교역의 중심지였던 동남아시아의 상품 수출은 급감했다. 여기에 1690년경 소빙하기가 찾아와 전 세계적 농산물 작황이 타격을 받았다. 이 와중에도 향료 무역을 독점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동남아시아의 주요 도시들은 “비통하게 침체된 오지”로 전락했다.
저자는 유럽과의 군사충돌에서 패배한 것이 동남아시아가 자본주의적 근대화에 실패한 결정적 이유라고 본다. 유럽인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군사력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동남아시아의 주요 도시들은 바다를 낀 항구들이어서 유럽 선박들의 해상 포격에 취약했다. 반면 당시 동남아시아의 전쟁 역량으로는 유럽인들의 요새를 공략할 수 없었다.
동남아시아가 15~17세기 전성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저자는 동남아시아가 19세기와 20세기 식민주의의 그늘을 털어버리고 교역의 시대에 누렸던 번영의 기억을 디딤돌 삼아 미래를 열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직전의 과거는 정치적 혼란과 분열, 사회적 불평등과 계층화, 외세의 경제적 지배에 대한 체념의 기억으로 가득하지만, 그보다 앞선 시대는 급속한 경제적 변화에 맞선 다채롭고 창조적인 대응, 다종의 사회 형태, 다양한 정치적·지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역사적 증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삼강에스앤씨 전 대표에게 징역 2년형이 확정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경영책임자가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은 건 이번이 두번째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26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삼강에스앤씨 전 대표 송모씨에게 이같이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선소장을 비롯해 당시 삼강에스앤씨 직원들은 징역형 또는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삼강에스앤씨 법인은 벌금 20억원을 확정받았다.
송씨 등은 2022년 2월19일 경남 고성군 삼강에스앤씨 조선소 사업장에서 50대 하청업체 직원 A씨가 선박 난간 보수 공사를 하다 추락해 숨진 사고와 관련해 안전조치를 다 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업장에서는 2021년 3월과 4월에도 협력업체 노동자가 작업 도중 사망하는 등 1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3명이 숨졌다.
송씨는 재판 과정에서 “A씨가 통제를 무시하고 작업 공간에 들어가 숨져 자신은 과실이 없고 안전 관련 조치를 했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삼강에스앤씨가 짧은 기한 내 선박 수리를 완료하기 위해 추락보호망 등 보호조치를 위한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저가로 선박 수리를 수주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면서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하청업체 현장소장은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하청업체 대표와 법인은 벌금 2000만원을 각각 선고받고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송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유는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임에도 삼강에스앤씨에서는 단기간 계속 사고가 발생했다”며 “이 같은 사정 등을 고려하면 양형은 사내 조직 문화나 안전 관리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여야 하고 이에 비춰볼 때 원심의 형은 적정하다”며 기각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의 안전 확보 의무 위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경영책임자가 이 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은 것은 두 번째로 알려졌다. 앞서 2022년 3월 경남 함안의 한국제강 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60대가 1.2t 무게의 방열판에 다리가 깔려 숨진 사고와 관련해 이듬해 12월 대표이사가 징역 1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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