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서 찰랑이는 ‘개성’…한정판과 ‘텀꾸’에 빠지다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자유게시판

내 손에서 찰랑이는 ‘개성’…한정판과 ‘텀꾸’에 빠지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길중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5-08-18 06:51

본문

캠핑족 또는 등산객들의 손에 들려 있던 다회용 물병, 텀블러가 미국 젠지(Gen Z, 1995~2010년 출생한 세대)들의 스타일을 상징하는 필수품이 됐다.
이들은 다양한 컬러의 텀블러를 사 모으고 각자의 개성대로 꾸민 나만의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텀블러는 어떻게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이 됐을까?
텀블러 열풍의 출발점에는 2019년 미국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한 ‘비스코 걸(VSCO girl)’ 트렌드가 있다. 사진 보정 애플리케이션 VSCO에서 이름을 딴 이 스타일은,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자연스러움과 환경친화적인 감성으로 인기를 모았다. 비스코 걸을 상징하는 아이템 중 하나였던 ‘하이드로 플라스크’ 텀블러는 곧 미국 10대 소비자들에게 ‘힙한’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편안하고 실용적인 비스코 걸의 스타일과 함께, 하이드로 플라스크를 비롯한 다회용 물병은 환경을 생각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대표하는 새로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후 미국의 텀블러 시장은 2022년 한 바이럴 영상으로 전환기를 맞게 된다. 이 영상에는 한 여성 운전자가 차량 사고 후 불타버린 차 안에서 유일하게 변함없는 형태로 남아 있는 스탠리 텀블러를 발견하는 장면이 담겼는데, 심지어 텀블러 안 얼음까지 그대로였던 것. 당시 영상은 틱톡에서 1억회 이상 조회되며 화제를 모았고 영상을 본 스탠리 측이 여성에게 직접 새 차를 선물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된다. 이후 100년 넘게 등산용 보온병 회사로 인식되던 스탠리 텀블러는 전통적인 캠핑·공구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스타 아이템’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스탠리의 대표 제품인 퀸처 텀블러 품절 행진을 이어갔고 매출 또한 급격히 증가했다. 2019년 7300만달러(약 1000억원)였던 스탠리사의 매출은 2023년에는 약 7억5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로 무려 10배 이상의 놀라운 성과를 기록하게 된다.
눈치 빠른 브랜드들의 전략으로 텀블러의 인기는 가속 페달을 밟는다. 하이드로 플라스크, 스탠리뿐 아니라 예티, 오왈라, 스웰 등 텀블러 브랜드들은 젊은 취향에 맞춘 제품 컬러 다양화, 한정판 텀블러 출시, 스타 협업 마케팅에 열을 올리며 소비자들의 관심과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데 성공한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커다란 텀블러를 손에 들고 다니는 모습이 포착됐고 유명 인플루언서는 물론 디토 소비(유명인을 따라 소비하는 형태)를 추구하는 젊은층들은 텀블러를 따라 구매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티커와 키링 등 다양한 굿즈를 적극 활용한 ‘텀꾸’(텀블러 꾸미기)가 놀이처럼 번지며 텀블러 열풍은 더욱더 빠르게 확산하게 된다.
텀블러의 인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미국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여전히 컬러별 출시일에 맞춰 품절과 오픈런 현상이 발생하고, 인기 색상은 중고 마켓 플랫폼에서 웃돈이 붙는 ‘리셀템’으로 판매되고 있다. 한정판 제품의 경우 50달러짜리 텀블러가 최대 800달러에 재판매될 정도다. 올리비아 로드리고, 포스트 말론, 타일라 등 팝스타와의 협업으로 젠지 세대 내 브랜드 위상을 확고히 한 스탠리는 최근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와 협업한 ‘메시 x 스탠리 1913 컬렉션’을 출시하며 스타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텀블러 열풍의 동력은 친환경 실천을 넘어서는 스타일 소비, 자기표현, 집단 정체감에 있다고 말한다. 젠지에게 텀블러는 생수병 대용품이 아니라 사소한 행복이자 환경 의식과 심미성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 새로운 소비 기호인 셈이다.
‘내시(환관·내관)의 별장인 성북동 별서 화재.’ 얼마전 서울 소재 문화유산(명승)인 ‘성북동 별서’ 내 목조 건물인 송석정에서 불이 났다.
이 화재로 ‘성북동 별서’의 전체 영역 중에 1953년에 신축된 송석정의 일부(3분의 1)가 파괴되었다.
‘성북동 별서’가 어떤 유산일까. 1992년 ‘성락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으로 재분류된 유산이다.
사적 지정 당시 이 별서의 주인공은 ‘환관’이 아니었다.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의친왕 이강(1877~1955)의 별궁’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19년 심각한 결격 사유가 드러났다. ‘이조판서 심상응’이 사료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문인 내시’의 별장
명승 지위가 졸지에 박탈될 운명에 놓였다. 그러나 여기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성락원이 고종(1863~1907)의 호종 내관인 황윤명(1848~?)의 별서(별장)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
‘내시’ 황윤명은 왕실, 그 중 중궁전에 속한 승전색(承傳色·왕 및 왕비의 명을 전달하는 내시 가운데 최고위직)이었다. 명례궁 대차지(종1품)를 역임했다.
명례궁은 중궁전에 속해 궁중의 주방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기관이다. 그 업무를 총괄한 핵심인물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황윤명은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로 칭송받은 ‘문인 내시’였다. ‘육교시사’(1870년대 후반 위항 문인의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황윤명의 글씨는 위창 오세창(1864~1953)의 <근묵>에 실려있고, 역대서화가의 평전인 <근역사화징>에도 이름이 올라있다.
황윤명은 중국과 조선의 명적을 모아 <난운관법첩> 3책을 목판으로 간행했다. 내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문집(<춘파유고>·1983)이 간행됐다. 황윤명은 공립학교인 삼산의숙까지 설립한 인물이다.
■명성황후 피란지
‘성락원’은 어떻게 내관 황윤명의 별서로 특정됐는가. 성락원의 영벽지 서측 바위에 새겨진 시가 결정적인 증거다.
이 시가 황윤명의 문집인 <춘파유고(春坡遺稿)>에 수록된 시문과 정확히 일치했다.
“온 시냇물 모아 흐르지 못하도록 막고서(百川會不流) 연못 만들어 푸른 난간 둘렀어라(爲沼碧欄頭)…”
중국 고사에 출전이 없는 고유 창작시니, 영벽지의 시는 황윤명의 작품이 확실한 것이다.(이원호 국립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
‘명성황후의 피란’은 팩트인가. 명성황후(1851~1895)는 1885년 12월21일 황윤명 등 3명에게 ‘일편단충(一片丹忠)’이라는 유묵을 써서 하나씩 나눠준 바 있다. 그런데 이화여대 박물관이 소장한 ‘일편단충’에 ‘황후의 황윤명 별서 피란 사실’이 기록돼있다.
“(갑신정변 발발) 다음 날…액례(내시부 소속 하급관리) 5~6명이 어가를 호위해 혜화문으로 나가 성북동 황윤명 집으로 향했다…쌍류동으로 따라갔다…태후, 왕비, 세자께서 머무르고 있었다…”
이에따라 ‘명승 성락원’은 ‘명승 성북동 별서’로 명칭만 바꾸고 문화유산의 지위를 유지했다.
■내시계의 악인
내시가 어떤 대우를 받았던가. ‘기능을 잃은 존재’로 치부되어 온갖 손가락질을 받고 희화화되었다.
또 군주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른 음모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내시=비인류’로 치부됐다.
“내시는 더럽고 흉측하니 인류가 아니다. 그런데도 가정을 이루고 산다. 아내가 혹 다른 남자와 접촉이 있을 때 유부녀의 잘못으로 죄를 주니 어찌 천리와 인정에 합당한 것인가….”(<송와잡기>)
물론 내시 중에는 악인이 분명 있었다. 대표주자가 고려 의종(1146~1170) 시대 환관인 정함이다. 정함은 의종의 유모를 아내로 삼는 등 의종의 최측근임을 과시했다.
그는 내시로는 처음으로 내전승반(정 7품)의 벼슬을 받았고, 임금이 하사한 서대(1품 이상 고관이 차는 무소 뿔 허리띠)를 차고 다녔다. 또 대궐의 동남쪽 30보 안에 200칸이 넘는 저택에서 호화생활을 즐겼다. <고려사>는 “우뚝 솟은 저택의 누각은 마치 궁궐 같았다”면서 “이처럼 법을 어지럽힌 환관은 듣도 보고 못했다”고 탄식했다. 정함은 문신 김존중(?~1156) 등과 결탁해서 매관매직을 일삼고 아부하는 자를 등용했다.
1156년(의종 10) 등창을 앓고 누운 정함을 문병하는 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국권이 환관에게 돌아갔구나!”(<고려사절요> 1156년조)라고 수근댔다. <고려사>의 사관은 “환관 정함 등의 농단이 결국 정중부(1106~1179)의 무신란(1170)을 초래했다”고 꼬집었다.(<고려사절요> 1157년조)
■‘내시 명필’
그러나 정함 같은 내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황윤명처럼 글씨도 잘 쓰고 학식이 뛰어난 내시도 있었다. 그럴만도 했다. 내시부에 소속된 내시(환관)들은 <논어>·<맹자> 등 사서와, <소학>, <삼강행실>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승진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내시명필’ 이봉정(생몰년 미상)이다. 이봉정이 모신 선조(1567~1608)는 ‘임진왜란을 초래한 암군(暗君)’이라는 혹평에 시달리지만 ‘서예’에서 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는 군주다.
그런데 이봉정은 선조의 붓과 벼루를 받들다가 임금의 필법까지 모방했다.
영의정 이준경(1499~1572)이 “내시인 네가 감히 어필(임금의 서법)을 모방하는가…고치지 않으면 자칫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 꾸짖었다. 깜짝 놀란 이봉정이 서법을 송설체(원나라 명필 조맹부의 필체)로 바꾸었다. 선조도 이봉정의 바뀐 필법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공사견문록>)
선조는 임진왜란 중에 직접 지은 어제시를 이봉정에게 내리기도 했다.
“…간곡히 이르노니 직무에 힘쓰고(丁寧寄語須勤職) 나의 말 저버리지 말고 실천하게.(莫負吾言更體哉)(<인조실록> 1648년 윤 3월17일)
이봉정이 선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가 또 있었다. 선조는 임진왜란 직후 의주 피란 당시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이봉정의 숨은 공을 밝혔다.
“과인이 명나라에 원병을 청하는 문제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을 때 시중 들던 이봉정이 ‘시세가 급하니 중국에 원병을 청해야 한다’고 적극 주선했다. 그래서 비변사에 명을 내려 의논하게 한 결과 의견이 합치됐다.”(1604년 3월23일)
이봉정은 광해군 연간에도 활약했다. 광해군이 “넌 선조 때는 매우 여위었는데, 지금은 살찌고 건강하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봉정이 답했다.
“모두가 전하(광해군)의 은혜 덕분입니다. 선조 때에는 너무도 부지런히 정사를 펼쳐서 저 같은 무리가 여위었지만 지금은 여유있게 일하니 이렇게 살이 찐 것입니다”고 대답했다.(태천잡기>)
얼핏 들으면 아부 같지만 곱씹어보면 ‘광해군, 당신은 부왕(선조)보다 정사에 게을리한다’는 날카로운 풍자였다.
■반학영(반하경)의 할복 순국
특히 필자의 심금을 울린 인물이 있다. 내시 반학영(이명 반하경·?~1910)이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우국지사다.
전남 장성 출신인 반학영(반하경)은 1840년생으로 추정된다. 어려서 양자로 입양되어 경기 파주 교하리로 이주했다. 그는 철종-고종-순종 등 3대에 걸쳐 승전색을 역임했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스스로 사퇴한 뒤 경기 파주에 은거했다. 그러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통분을 참지 못했다.
그는 양숙부 홍택주를 찾아 “평생 임금의 은혜를 입고 살아온 내가 나라가 망했으나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겠다”라고 하면서 결별을 고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파주 삽다리 장터에 이르러 “비록 내시의 신분이지만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따뜻한 방에서 죽을 수 있겠는가”면서 대로변에서 할복으로 순국 했다. 반학영이 장터 게시판에 한 장의 유서를 걸었다.
“대대로 나라의 녹을 받는 신하였으니 어찌 다른 임금을 섬기리오. 내가 배를 갈라 민영환(1861~1905)과 여러 충신과 함께 지하에서 27대 군왕을 섬길 것이니, 이천만 동포는 혈심(血心)으로 단결하여 충성을 본받으라.”
■궁문에 걸린 김순손의 머리
희대의 폭군인 연산군에게 죽음을 무릅쓴 충간을 서슴지않은 두 내시가 있었다. 환관 김순손(?~1504)과 김처선(?~1505)이다.
김순손은 연산군(1494~1506) 연간에 왕명을 전달하는 승전색으로 일해왔다. 그런데 연산군 즉위 후 1년 만에 사달이 일어났다.
연산군이 “김순손을 의금부에 하옥하여 곤장 100대를 치고 지방 군대에 편입시키라”(<연산군일기> 1495년 6월29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때 연산군은 처벌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훗날 <연산군일기>가 산발적으로 밝힌 사건의 전모가 낯뜨거웠다.
연산군이 암말과 수말을 궁궐 안채(내정·內庭)까지 끌어들여 교미 장면을 구경하고 온갖 난잡한 행위를 일삼았다는 것이다.
그 때는 부왕(성종)의 초상(장례식)이 끝나기도 전(1495년)이었다. 김순손은 이와같은 연산군의 난행에 ‘아니되옵니다’를 외쳤다.(<연산군일기> 1496년 5월13일) 그 뿐이 아니었다.
김순손은 술에 취한 연산군이 선왕(성종)의 후궁을 간음하려 하자 “안됩니다”라고 말렸다.(<연산군일기> 1504년 3월12일)
김순손을 제주도로 쫓아낸 연산군은 “환관으로서 정치에 간여했고, 임금을 업신여긴 김순손을 제주도 현지에서 처형하라”(1496년 5월13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승정원과 3사(홍문관·사헌부·사간원·승정원)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극형에 처할 죄를 지었다 해도 마땅히 서울로 압송해서 그 죄를 밝힌 뒤 처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반대했다.
연산군이 김순손을 서울로 압송하지 않고 굳이 ‘제주도 현지 처형’을 주장한 이유가 있다. 김순손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연산군의 난행’을 적나라하게 진술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연산군의 뒤끝이 결국 작렬했다. 연산군은 갑자사화의 피바람 속에서 제주에 안치되어 있던 김순손을 참형에 처했다.(1504년 3월30일) 연산군은 김순손의 머리를 단봉문(창덕궁의 문)에 두고 내시들에게 보인 뒤 내시부에 간직하게 했다.(4월13일)
■“김처선의 처(處)자도 쓰지 마!”
환관 김처선은 성종의 총애를 받아 정2품(판서급) 자헌대부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러나 김처선의 운명은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급전직하한다. 연산군이 무오사화(1498)-갑자사화(1504)를 일으키면서 대대적인 살육에 나섰다. <연산군일기> 1505년 4월1일자 기사가 눈길을 끈다.
“연산군이 궁중에서 술에 몹시 취해서 임금을 꾸짖은 환관 김처선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임금을 꾸짖었다’는 그 내용은 무엇일까.
“김처선은 어둡고 음란한 연산군에게 매번 정성을 다해 간언했다. 연산군은 노여움을 속에 쌓아두고 있었다. 급기야 임금이 궁중에서 처용놀이를 했는데 음란함이 지나쳤다.”(<소문쇄록>)
1505년 4월1일이었다. 역시 거나한 술자리가 벌어졌고, 작심한 김처선이 독설을 퍼부었다.
“늙은 놈이 네 분 임금을 섬겼지만, 고금에 전하와 같은 짓을 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연산군이 크게 성을 내며 화살을 쏘았고, 그 화살이 김처선의 갈빗대에 맞혔다. 그러나 김처선은 그치지 않았다.
“늙은 내시가 어찌 감히 죽음을 아끼겠습니까. 전하께서 오래도록 보위에 계시지 못할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연산군이 화살을 더 쏘아 땅에 넘어뜨리고, 그 다리를 끊고서 “일어나 다니라”고 명했다.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다닐 수 있습니까.”(김처선)
연산군은 김처선의 혀를 자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 냈다. 김처선은 죽을 때까지 말을 그치지 아니했다.
연산군은 김처선의 시체를 범에게 주면서 이성을 잃은 후속조치를 남발했다.(<연산군일기> 1505년 4월 4일)
우선 조정과 민간에서 ‘처(處)’ 자는 입밖에 내지도 말라는 명을 내렸다. 예컨대 그 해 과거시험 답안지에 ‘처(處)’ 자를 썼던 유생(권벌)의 합격이 취소되기도 했다. 김처선의 집을 헐고, 연못을 파도록 했으며, 그의 죄명을 돌에 새겨 묻으라는 명까지 내렸다.
심지어 김처선의 이름을 가진 자는 모두 개명하라는 명까지 내린다. 24절기 중 ‘처서(處暑)’를 ‘조서(徂暑)’로 고치기도 했다. 연산군은 ‘입은 화의 문(口是禍之門), 혀는 내 몸을 베는 칼(舌是斬身刀)’이라는 글귀를 나무패에 새겨 내시는 물론 관리들도 차고 다니도록 명했다.(1505년 1월29일)
■고려를 지킨 내시 방신우
고려 시대 내시 중 으뜸은 방신우(1267~1343)다. 원나라의 직접 통치를 받을 운명이던 고려를 구한 인물이다.
경북 상주 출신인 방신우는 충렬왕의 제1비인 제국대장공주(1259~1297)의 시중을 들기 위해 원나라로 갔다. 7명의 황제와 2명의 태후를 섬겼다. 그 덕에 온갖 금은보화와 함께 원나라 강남 지방의 땅 4000무(81만평)를 하사받았다.
충선왕(재위 1298, 1308~1313) 연간의 일이었다. 요양행성(원나라 행정 구역)의 우승상인 홍중희가 “충선왕이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면서 원나라 중서성에 무고하고 “충선왕을 소환하여 저(홍중희)와 대질시키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방신우는 황태후에게 “고려를 배반하고 도망온 홍중희가 거짓사실로 본국(고려)을 전복하려 한다”고 아뢰었다. 결국 홍중희는 무고죄로 곤장을 맞고 유배되었다. 또 한번의 고비가 있었다.
삭방(북방)의 번왕(제후)인 팔려미사라는 인물이 무리를 이끌고 원나라에 귀순했다. 원나라 황실은 그들을 압록강 동쪽에 거주시키려고 하였다. 그때 방신우가 “아니되옵니다”를 외쳤다.
“고려는 땅이 협소하고 산이 많아 농사나 목축업이 불가능합니다. 북방인들이 편안하게 살지 못할 것이며, 동쪽민들을 동요시킬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원나라 황제가 “네 말이 옳다”고 여겨 중지시켰다. 그 뿐이 아니었다. 일찍이 원나라가 고려에 행성(원나라 직할지)을 세우려 했다.
그러자 방신우가 황태후를 설득하여 그 계획을 취소시켰다.
■공민왕을 지킨 이강달·안도적
1363년(공민왕 12) 윤3월1일 흥왕사(개경 근처 사찰)에 머무르고 있던 공민왕을 시해하려는 음모가 벌어졌다
이때 공민왕을 지키던 숙위(경호원)가 모두 달아났다. 반란의 무리가 침전에 들이닥치기 직전 환관 이강달이 왕을 업고 창문을 통해 탈출했다. 이강달은 공민왕을 태후의 침실에 숨겼다.
그 순간 공민왕과 용모가 비슷한 환관 안도적이 침대 안에 들어가 누웠다. 반란군은 안도적을 공민왕으로 오인하고 죽였다. 그러나 공민왕의 무사와 함께 흥왕사 반란사건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강달의 활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374년(공민왕 23) 9월 자제위 최만생·홍륜이 공민왕을 시해했을 때 이강달은 맨먼저 침전에 들어갔다. 이강달은 온 방이 피바다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나 이강달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밖으로 나와 “주상께서는 괜찮다”고 하고는 문을 걸어잠궜다.
왕의 죽음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이강달은 경복흥(?~1380·이인임(?~1388)·안사기(?~1375) 등을 불러 역적 토벌을 논의했다. 그 덕에 최만생과 홍륜 등은 체포되어 거열형에 처해졌다.
■“사대부가 너만 못하구나!”
내시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떠오른 실록 기사가 하나 있다. <선조수정실록> 1592년 6월1일자 기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피란길에 나서자)…명망 진신들이 각자 몸보신에 혈안이 되어…뿔뿔이 흩어졌다…서울~의주에 이르기까지 선조를 따르던 문·무관은 겨우 17명…나머지는 환관 수십명과 어의 허준(1539~1615), 마부, 하급관리 등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의주에 도착한 선조가 내관(내시)에게 말했다. “사대부가 너희들만도 못하구나.”
1910년 국권침탈 뒤 대로변에서 자결 순국한 내관 반학영 선생의 한마디가 심금을 울린다. “비록 내시의 몸이지만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내가 따뜻한 방에서 죽을 수 있단 말인가.”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태평양 참다랑어는 고급 초밥과 회의 주요 재료로 오랫동안 수요가 높았다. 그 결과 2010년대 초 태평양 참다랑어는 사실상 상업적 붕괴 직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놀랍게도 현재 태평양 참다랑어 자원은 불과 15년 전에는 예측하기 어려웠던 회복을 앞두고 있으며 앞으로 이 회복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한국 등 주요 국가들의 결정에 달려 있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 제주도 인근과 동해안 지역에서 고등어 등 다른 어종을 주로 조업하는 근해 기선 저인망 어선들과 다양한 어구를 사용하는 어선들이 태평양 참다랑어 조업을 하고 있다.
올해는 태평양 참다랑어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이처럼 중요한 어종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관리할지에 관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참다랑어는 한때 남획으로 자원이 거의 바닥나 상업적 붕괴 직전까지 갔던 어종이다. 참다랑어 수요는 급증했지만 이를 제어할 강력한 관리 장치는 없었고, 결국 2010년에는 원래 자원량의 2%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태평양 전역에서는 여전히 과도한 어획이 이어졌고, 참다랑어는 과잉 어획의 압력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이런 위기를 계기로 2016년 한국과 일본, 멕시코, 대만, 미국 등 5개국은 ‘태평양 참다랑어 공동작업반(Joint Working Group)’이라는 협의체를 만들어 어획량을 줄이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자원 회복을 목표로 어획량을 대폭 줄이는 계획을 세웠고, 불과 몇년 만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발표된 자원 평가 결과(2024년 기준)를 보면, 참다랑어 자원은 이제 초기 상태의 20%를 넘는 수준까지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과 비교하면 꽤 의미 있는 반등으로, 참다랑어에 의존하는 지역 사회와 어업 종사자 모두에게 희망적인 소식이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며, 참다랑어 자원 회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매년 태평양 참다랑어 조업 규칙을 정하는 지역수산관리기구(RFMOs)는 어획량과 향후 관리 조치를 논의한다.
지난 7월9~12일에 서태평양수산위원회(WCPFC)·동태평양참치위원회(IATTC) 회원국들로 구성된 공동작업반이 일본에서 만나 새로운 관리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지 못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늦은 것은 아니다. 올해 안에 다시 만나 장기적이고 과학에 기반한 계획을 확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과 다른 회원국들이 공통의 입장을 도출하고, 단기적 이해관계보다 종 장기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과거 참다랑어가 위기에 빠졌던 이유도 경제 논리에만 의존한 결정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다시 위험한 판단으로 되돌아가기보다는, 예측 가능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이 자원을 지켜가겠다는 약속을 중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업계 역시 어업의 안정화를 이루고 장기적으로는 더 큰 수익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북태평양 국가들이 다음 회의에서 태평양 참다랑어에 대한 ‘과학 기반의 최종 관리 절차’를 채택한다면, 참다랑어 자원과 어업의 미래를 지키는 데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디디게 될 것이다. 수산자원의 상태에 따라 자동으로 어획량이 조정되는 이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자원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참다랑어 자원이 빠르게 회복된 지금, 그리고 그 회복을 가능하게 한 국제 협력의 성과를 돌아보는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지속 가능한 수산 관리의 글로벌 리더로 나설 기회다.
김건희 여사가 12일 구속된 이유는 ‘증거인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법원에서 인정됐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김 여사가 과거 해외 순방 때 착용한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에 대한 거짓진술이 구속 여부를 가른 것으로 평가된다. 특검 본 수사 개시 41일 만이자 소환 조사 6일 만에 김 여사는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됐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정재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김 여사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증거를 인멸할 염려’를 구속 사유로 꼽았다. 김 여사가 그간 수사기관의 소환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말을 계속 바꾸는 모습을 보여 구속할 필요가 있다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김 여사 측은 영장 심사에서 지난 6일 소환 조사 때처럼 일체의 혐의를 부인했다. 자신의 휴대전화도 이미 수사기관에 압수돼 증거 인멸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여사가 구속된 이유는 결국 ‘김 여사의 진술’ 때문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날 영장 심사 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은 ‘반클리프 목걸이’였다고 한다. 김 여사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의에 참석하면서 이 목걸이 등 1억원대 고가 장신구를 착용했는데, 재산공개 신고 대상(500만원 이상 기준)에 포함하지 않으면서 당시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실은 “일부는 지인에게 빌렸다”고 해명했다. 3년이 흐른 뒤인 지난 5월 김 여사 측은 “모조품이었고 직접 구매했다”고 말을 바꿨다. 김 여사는 지난 6일 특검 소환 조사 때는 “어머니(최은순씨)에게 모조품을 선물했고, 순방 때 빌려 착용했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그는 이 모조품 목걸이를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했다”고도 했다.
특검은 지난달 25일 김 여사의 오빠 김모씨의 장모 집에서 이 목걸이의 실물을 발견했으나 감정결과 모조품으로 드러났다. 이후 이 목걸이 구매자 중에 서희건설이 있다는 점을 밝혀냈고 지난 11일 서희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결국 서희건설 측은 특검에 “반클리프 목걸이를 구매한 게 맞다”는 자수서를 냈고 진품도 제출했다. 모조품이고 자신이 산 것이라던 김 여사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특검은 윤석열 정부에서 특혜 논란이 일었던 로봇개 사업자가 2022년 9월 김 여사에게 5000만원대 명품 시계를 전달했고 이 시계가 현재 사라진 점도 이날 법원에 구속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특검은 김씨의 장모 집에서 명품 시계 ‘바쉐론 콘스탄틴’ 상자와 정품 보증서를 확보했지만 시계의 실물은 확보하지 못했다.
특검은 구속영장 청구서에 순방 목걸이나 명품 시계와 관련한 혐의는 담지 않았지만 김 여사의 거짓진술을 뒤집는 근거로 적극 활용했다. 그중에서도 서희건설로부터 받아온 목걸이 실물은 결정적인 ‘한방’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김 여사가 여전히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하급자에게 외압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강조했다. 자신의 최측근이자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근무한 유모·정모씨는 현재 김 여사가 운영 중인 코바나콘텐츠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 여사로부터 월 100여만원 정도의 돈을 받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김 여사는 지난 5년여간 숱한 의혹들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지 않았다. 특검 출범 전 검찰이 수차례 소환 조사를 통보했지만 불응했고, 돌연 지병 등을 이유로 열흘 넘게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특검은 이 점도 언급하면서 수사에 성실히 임하지 않고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것은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자본시장법 위반)’ ‘명태균 게이트 공천 개입 의혹(정치자금법 위반)’ ‘건진법사 연루 청탁·물품 수수 의혹(알선수재)’ 등 세 가지 혐의가 일정 부분 입증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원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를 인정해야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특검이 확보한 통화 녹취 등 객관적인 증거물과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해 확보한 진술 등이 구속 필요성에 핵심 증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가 구속되면서 사상 초유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 수감되는 오명을 쓰게 됐다. 공교롭게도 이날 영장심사 장소인 321호 법정은 윤 전 대통령의 영장 심사가 진행된 곳이기도 하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같은 법정에 영장 심사를 받고 나란히 구속됐다. 특검은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한 만큼 남은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가느다란 대나무살이 장인의 손끝을 따라 한 줄 한 줄 결을 갖춰간다. 수십차례에 걸쳐 삶고, 쪼개고, 다듬는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한 자루의 부채가 완성된다. 한지를 덧댄 부채 면에는 삿갓을 쓰거나 붓을 든 미키마우스가 등장한다.
전통 수공예 위에 세계적인 캐릭터가 입혀진 이곳은 전남 구례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전통 부채 공방 ‘죽호바람’이다.
13일 오후 찾은 죽호바람 공방은 겉보기엔 오래된 농가주택처럼 소박했지만, 문을 열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벽면에는 100여 종의 부채가 정갈하게 걸려 있었다. 공방 안쪽에는 제작이 한창인 작업실이 이어져 있었다. 마당에는 삶아낸 대나무가 수북이 쌓여 햇볕에 말라갔다.
죽호바람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김주용 장인(49)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부채 장인이었던 부친이 병을 앓으면서, 김 장인은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2002년부터 가업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부채 제작 외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의 기술에 기획력을 더한 허혜인 대표는 2021년 브랜드를 법인화하며, 죽호바람을 전통공예 기반의 문화콘텐츠 브랜드로 키웠다. 김 장인은 공방에서 약 1㎞ 떨어진 대숲에서 왕대를 벌채하고, 삶고 발색 등 가공하는 전 과정을 직접 해낸다.
지리산 자락에서 자란 왕대는 결이 곱고 탄성이 뛰어나 전통 부채 제작에 적합하다. 특히 겨울철에 채취한 대나무는 수분 함량이 낮고 병해충 피해가 적어 품질이 우수하다. 대나무를 삶고 말리는 데만 한 달 이상이 걸린다. 완성된 부채살은 일정 간격으로 배열해 한지를 덧입히고, ‘합축’ 공정을 거쳐 비로소 한 자루의 부채로 완성된다. 김 장인은 “시간을 들여야 제대로 된 부채가 나온다”고 말했다.
시골 공방이던 죽호바람이 대중에게 각인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 배경엔 전남도와 전남관광재단이 함께 추진한 지역 관광 프로젝트 ‘관광두레’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2019년부터 추진 중인 이 사업은 지역 주민이 주도해 관광사업체를 발굴·육성하는 주민 참여형 협력 모델이다.
죽호바람도 2024년 주민사업체로 선정돼 기획, 브랜딩, 홍보·유통 전반의 지원을 받아 전통공예를 현대적 콘텐츠로 확장할 기반을 마련했다.
죽호바람은 올해 초 세계적인 기업과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적 정서를 입은 미키마우스는 수차례의 시안 조율 끝에 한지 위에 새롭게 디자인됐다. 단순한 콜라보를 넘어 전통 수공예와 세계적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감각적으로 전통을 소비하려는 MZ세대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죽호바람의 부채는 현재 온라인 플랫폼 ‘아이디어스’, 북촌 한옥마을 편집숍 등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점차 유통채널을 넓혀가고 있다.
죽호바람은 전통문화 체험 공간으로도 운영된다. 최근 3개월간 약 800여 명이 공방을 방문했다. 지역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단체 체험문의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직접 부채살을 놓고 한지를 붙이는 공정을 체험하며, 전통공예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허 대표는 “중국산 부채가 체험 현장에 깔려 있는 현실에서, 국산 수공예 부채를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유통 구조를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죽호바람은 전통공예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한 콘텐츠로 연결하는 행정협력의 성과로도 주목받고 있다.
전남관광재단 관계자는 “죽호바람은 전통의 원형을 지키면서도 시장성과 예술성을 모두 입증한 대표 사례”라며 “장인과 주민이 주도하는 지속 가능한 관광 콘텐츠가 전남 전역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부천이혼전문변호사 이혼전문변호사 의정부성범죄전문변호사 안양상간소송변호사 폰테크 분당강제추행변호사 폰테크 평택학교폭력변호사 네이버 홈페이지 상위노출 의정부이혼전문변호사 안양학교폭력변호사 네이버 사이트 상위노출 의정부성범죄변호사 해시드김서준 중고트럭매매 분당불법촬영변호사 수원소년재판변호사 용인불법촬영변호사 성남학교폭력변호사 클러스터용인경남아너스빌 성남학교폭력변호사 분당강제추행변호사 레플리카사이트 명품레플리카 부산홈페이지제작 승소사례 의정부소년법전문변호사 의정부법무법인 의정부이혼전문변호사 네이버 사이트 상위노출 승소사례 남양주대형로펌 의정부법률사무소 병원 마케팅 발기부전치료제구매 네이버 홈페이지 상위노출 수원이혼전문변호사 수원강제추행변호사 수원형사변호사 상간녀위자료 네이버 사이트 상위노출 수원강간변호사 여자명품레플리카사이트 안산학교폭력변호사 성남성범죄전문변호사 명품쇼핑 폰테크 안산이혼변호사 안양이혼변호사 소액결제 미납 인터넷가입 수원성범죄전문변호사 용인불법촬영변호사 명품레플리카쇼핑몰 레플리카사이트 세종이혼전문변호사 수원성범죄전문변호사 의정부소년보호사건변호사 안양이혼전문변호사 수원음주운전변호사 용인이혼전문변호사 인스타그램 팔로워 구매 수원음주운전변호사 성남상간소송변호사 인터넷비교사이트 위자료 이혼상담 해시드벤처스 남양주법무법인 당일 폰테크 인터넷설치현금 수원법률사무소 수원법률사무소 의정부변호사 해시드벤처스 성남대형로펌 중고화물차매매 브랜드이모티콘 폰테크 카페 수원이혼변호사 부장검사출신변호사 문해력 책 창원이혼전문변호사 성남이혼변호사 용인상간소송변호사 수원형사전문변호사 조정이혼 분당강간변호사 인터넷설치현금 안양학교폭력변호사 수원상간소송변호사 안양상간소송변호사 수원법무법인 전주 효자동 센트럴에비뉴원 용인성범죄전문변호사 남양주법무법인 프릴리지구입 의정부법률사무소 수원변호사 성남학교폭력변호사 의정부대형로펌 수원불법촬영변호사 남자레플리카사이트 수원형사변호사 폰테크 사이트 성남성범죄변호사 의정부대형로펌 수원강제추행변호사 성남성범죄변호사 호텔더보타닉세운명동 수원법무법인 안양학교폭력변호사 남양주음주운전변호사 성남법무법인 분당성추행변호사 승소사례 수원강간변호사 용인강간변호사 사이트 마케팅 남양주음주운전변호사 의정부학교폭력변호사 의정부변호사 성남성범죄변호사 안양음주운전변호사 용인법무법인 수원대형로펌 용인강간변호사 울산이혼전문변호사 수원상간소송변호사 포천학교폭력변호사 안양음주운전변호사 내구제 조정이혼 남자레플리카 성남상간소송변호사 의정부촉법소년변호사 비닉스구입 협의이혼 수원강간변호사 네이버 상위노출 용인불법촬영변호사 명품레플리카사이트 구리학교폭력변호사 인터넷티비현금많이주는곳 폰테크 홈페이지 사이트 마케팅 인스타 좋아요 구매 여성최음제구입 용인상간소송변호사 수원법무법인 구리학교폭력변호사 수원상간녀변호사 성남음주운전변호사 수원불법촬영변호사 사이트 상위노출 용인이혼전문변호사 의정부상간소송변호사 폰테크 용인이혼변호사 오산개인회생 덕소역라온프라이빗 해시드김서준 수원변호사 수원강간변호사 의정부변호사 당일 폰테크 평택학교폭력변호사 분당성추행변호사 용인소년보호사건변호사 안양이혼변호사 수원법무법인 수원성범죄전문변호사 의정부이혼변호사 해시드벤처스 수원법무법인 의정부학교폭력변호사 수원강간변호사 인터넷비교사이트 성남대형로펌 양주학교폭력변호사 이미테이션가방 성남대형로펌 소액결제 정책 대출갤러리 의정부이혼전문변호사 안양법무법인 수원형사전문변호사 비대면 폰테크 수원형사변호사 네이버 웹사이트 상위노출 의정부이혼변호사 포항이혼전문변호사 명품레플리카 웹사이트 상위노출 문해력강의 창원이혼전문변호사 용인소년사건변호사 용인성범죄변호사 팔팔정구입 안산음주운전변호사 포항이혼전문변호사 명품쇼핑몰 의정부이혼전문변호사 용인성범죄전문변호사 수원리딩방사기변호사 수원이혼전문변호사 양주학교폭력변호사 인터넷가입사은품많이주는곳 용인불법촬영변호사 안양학교폭력변호사 수원상간소송변호사 차장검사출신변호사 의정부음주운전변호사 폰테크 명품레플리카사이트 수원강제추행변호사 용인성범죄변호사 인터넷가입사은품많이주는곳 수원불법촬영변호사 문해력 안양상간소송변호사 비대면 폰테크 인스타 팔로워 성남성범죄전문변호사 평택학교폭력변호사 마사지구인 안양음주운전변호사 의정부음주운전변호사 폰테크 의정부이혼변호사 수원성범죄전문변호사 수원불법촬영변호사 수원형사전문변호사 수원이혼전문변호사 분당강간변호사 의정부이혼변호사 수원법률사무소 명품짭 아이폰 콘텐츠이용료 수원학교폭력변호사 네이버 사이트 상위노출 네이버마케팅 포천학교폭력변호사 의정부이혼전문변호사 수원형사변호사 성남성범죄변호사 성남학교폭력변호사 수원강제추행변호사 이혼상담 인터넷가입사은품많이주는곳 용인성범죄전문변호사 상간녀소송 웹사이트 상위노출 양육권 상간남소송 안양상간소송변호사 수원상간소송변호사 의정부음주운전변호사 수원음주운전변호사 의정부상간소송변호사 백링크 문화상품권현금화 협의이혼 수원법률사무소 의정부상간소송변호사 수원법률사무소 의정부법무법인 차장검사출신변호사 남양주음주운전변호사 csn=dlNsbU4zdmZLRFVES1FHQnFzLzdSQT09" target="_blank">해시드벤처스 성남성범죄전문변호사 수원음주운전변호사 수원강간변호사 의정부이혼변호사 수원이혼변호사 용인성범죄변호사 성남성범죄변호사 안양학교폭력변호사 상조내구제 성남성범죄변호사 포천학교폭력변호사 안산이혼변호사 분당강제추행변호사 수원법률사무소 부천이혼전문변호사 컬쳐랜드현금화 성남성범죄변호사 폰테크 카페 인천이혼전문변호사 의정부학교폭력변호사 의정부이혼전문변호사 수원음주운전변호사 용인성추행변호사 의정부소년재판변호사 안양이혼전문변호사 안산학교폭력변호사 성남성범죄변호사 인터넷비교사이트 수원형사전문변호사 안양이혼전문변호사 명품레플리카사이트 성남이혼변호사 인스타 팔로워 구매 명품레플리카 수원법률사무소 인터넷가입현금지원 신카박 소액결제대행사 분당불법촬영변호사 분당강간변호사 당일폰테크 의정부법률사무소 해시드벤처스 분당성추행변호사 승소사례 분당성추행변호사 수원대형로펌 폰테크 당일 고양이혼전문변호사 안산이혼변호사 홈페이지 상위노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사이트 정보

회사명 : 회사명 / 대표 : 대표자명
주소 : OO도 OO시 OO구 OO동 123-45
사업자 등록번호 : 123-45-67890
전화 : 02-123-4567 팩스 : 02-123-4568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제 OO구 - 123호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정보책임자명

공지사항

  • 게시물이 없습니다.

접속자집계

오늘
1,810
어제
2,278
최대
24,404
전체
1,573,794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