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망머니 [정지아의 할매 열전]엉덩이로 살아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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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짐네 마루에는 늘 흙투성이 일복이 놓여 있었다. 앉은걸음으로 마루 끝에 당도한 아짐은 평상복 위에 두툼한 일바지를 껴입고는 두 팔에 힘을 주어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두 팔과 엉덩이를 지렛대 삼아 흐느적거리는 다리를 끌고 밭에 당도한 아짐은 점심도 거른 채 죽어라 일만 했다. 엉덩이를 끌며 잔돌투성이 길을 오가고 흙밭에서 일하다 보니 바지 뒤가 노상 해졌다. 해진 곳에 얼마나 여러 번 새 천을 덧댔는지 일복을 입은 아짐의 엉덩이는 흑인 여성의 엉덩이처럼 거대했다.
마을 한가운데 살았지만 아짐은 언제나 혼자였다.
집 근처 커다란 팽나무 아래 누군가 놓아둔 평상은 동네 여자들의 일터요, 수다방이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아짐의 앉은걸음 속도가 유독 빨랐다. 보통 사람의 걸음보다도 더 빠른 것 같았다. 아짐의 거대한 엉덩이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기도 전에 누군가 아짐 흉을 보기 시작했다.
“반펭상을 보고 살았는디 한마을 삼시로 먼 심보로 인사 한번을 안 허까이.”
“인사만 안 허가니? 혼사고 장사고, 저 예년네헌티 십 원 한 장 받은 사램 있으먼 나서보소. 나넌 무시 한뿌랭이 받은 적이 읎네.”
동네 사람에게 아짐은 인사성 없고, 야박하고, 인색하고, 한마디로 경우 없는 여편네였다.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날 밤, 어둑어둑한 논에서 아짐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무슨 일로 그 시간에 그 길을 지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한테 혼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발길을 재촉하던 나는 우연히 아짐의 논으로 시선을 두었다가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내 종아리에 닿을까 말까 한 어린 벼 사이로 시커먼 그림자가 보였다. 가만 보니 아짐이었다. 물이 자박자박한 논에 퍼질러 앉은 아짐이 걱정되어 나는 큰 소리로 여러 차례 아짐을 불렀다. 아짐은 석상이나 된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산중이라 이제 곧 시커먼 어둠이 닥칠 테고 나는 논두렁을 걸어 아짐에게 다가갔다. 아짐이 향해 앉은 쪽의 벼들이 뭉개진 게 보였다. 아마 피를 뽑으러 나온 아짐의 엉덩이에 당한 듯했다. 아짐네 벼와 벼 사이는 다른 논과 달리 간격이 넓었다. 엉덩이로 걸어야 하는 아짐의 몸 간격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해만 유독 가깝게 심어진 것인지 아니면 아짐의 몸집이 불은 것인지는 모른다. 부지런히 피를 뽑다 저녁 하러 돌아선 아짐의 눈에 자신의 엉덩이에 짓눌린 벼가 보였던 게 아닐까. 그 순간 아득해진 게 아닐까.
나는 신발을 벗고 논으로 내려가 아짐 앞에 앉았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어깨라도 툭툭 건드렸다가는 어쩐지 아짐이 갇힌 수렁에서 다시는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아짐은 울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아짐은 바로 코앞에 있는 나를 잠시 뒤에야 알아차렸다. 내가 먼저 일어나 걸음을 뗐고 아짐이 엉덩이로 진흙을 미는 소리가 들렸다. 논두렁으로 오르는 아짐에게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아짐이 두 팔로 논두렁을 짚고 몸을 끌어올리는 모습이 숭고한 의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짐과 나는 서너 걸음의 간격을 두고 천천히 마을로 돌아왔다. 그 뒤로 나는 아짐에 대한 소문이나 흉 따위를 믿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홀로 울 수 있는 사람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앉은뱅이 엄마 없이(살아 있었지만 아짐은 끝끝내 어떤 자식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결혼식을 치른 아짐의 자식들은 전처소생 딸 둘을 포함해 일곱 남매 모두 서울에서, 안양에서, 구례에서 씩씩하게 잘살고 있다. 홀로 소리 없이 울며 견뎌온 아짐의 지독한 의지 덕분일 게다. 전동차에 앉아 언덕빼기도 쌩쌩 오르며 밤을 줍는 동네 할매들을 볼 때마다 휠체어도 무엇도 없이 오직 자신의 엉덩이로 세상을 헤쳐나갔던 아짐 생각에 나도 그만 아득해진다.
새벽 낭송을 한다. 상반기에는 <주역>을, 요즘은 <불경>을 읽고 있다. 발심한 친구들이 새벽 정해진 시간에 온라인으로 만나 40분 정도 한 단락씩 돌아가며 낭송한다. 설명도 토론도 없이 오로지 낭송뿐이다. 그런데도 이 시간은 소리의 리듬과 공명이 텍스트 이해를 넘어 타자에게 감응하는 수행, 몸과 마음이 함께 깨어나는 리추얼의 시간이 된다.
그렇다고 텍스트가 주는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3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계엄·탄핵 정국에서 읽은 <주역>은 64괘가 담고 있는 흥망성쇠의 엄정한 순환과 극에 달하면 반드시 변한다는 ‘궁즉변(窮則變)’의 메시지로 평정심을 되찾게 했다.
요즘 읽는 <불경>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에는 붓다가 기원전 6세기 북인도의 수많은 제자백가 중 한 명에 불과했다는 점, 그리고 그의 첫 제자는 불과 다섯 명이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위대한 불교 사상은 서른다섯 살의 젊은 리더와 그의 비전에 감응한 다섯 명, 이렇게 여섯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부처님 전기가 대부분 율장(律藏)에서 편집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율장하면 엄격한 계율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초기 승가 공동체 안의 구체적 사건 기록이었다. 병든 동료를 돌보지 않았을 때, 질투로 다투었을 때, 외부에서 추앙하거나 멸시할 때, 부처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했는가, 율장은 그 ‘판례집’이었다.
일찍이 피에르 아도는 고대철학이란 사변이 아니라 삶의 양식이었다고 말한다. 즉 고대철학은 스승과 제자로 구성된 생활공동체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단련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서양만의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동아시아 최고의 고전인 <논어> 역시 깐깐한 스승과 똘똘한 제자가 “어떻게 해야 인간답게(仁) 살 수 있을까”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토론했던 문답의 기록이니 말이다.
내가 만난 율장 속 붓다도 그러했다. 설법은 늘 보시하라, 즉 가진 것을 나눠라와 계를 지켜라, 그러니까 간결하고 청빈하게 살아라로부터 시작한다. 그다음 감각적 욕망에 휘둘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서야 마지막으로 ‘고집멸도’라는 그 심오한 연기법을 설파한다. ‘사는 법’ 위에서만 ‘진리의 법’은 피어난다.
하지만 사는 법은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다. 초기 승가 공동체는 버려진 천을 기워 만든 분소의(糞掃衣)를 입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재가자들이 보시하는 옷을 허용했다. 더 많은 이들과 결속했겠지만, 초기의 견결함은 다소 후퇴했을 것이다. 데바닷타의 반역은 바로 그 경계에서 일어난 역설이었다. 붓다의 사촌이자 출가 제자였던 그는 승가의 세속화를 비난하고, 엄격한 고행을 주장하며 공동체의 분열을 일으켰다.
내가 속한 인문학공동체도 이제 17년이 되었다. 처음부터 공부는 구원을 향한 정진이라 믿었고, 그 안에서 우리 나름의 생태적이고 아나키적인 삶의 양태를 형성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대 차이를 비롯해 모든 것이 삐걱댄다. 공동체 식탁을 차릴 것인가, 에세이를 쓸 것인가, 연대투쟁에 나갈 것인가 같은, 예전에는 이심전심으로 소통되던 것들이 지금은 서로의 신경을 거스르는 이슈가 되었다. 나는 우리에게 여전히 ‘공통적인 것’이 남아 있는지 의심한다. 우리가 다시 승가처럼 ‘잘 사는 법’을 함께 조율해 나가는 인문학-수행 결사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붓다공동체가 완벽한 이상향이 아니라, 늘 갈등 속에 공동체의 일기를 매번 다시 써나갔다는 데에서 가능성을 찾는다. 그리고 고타마와 다섯 명의 초기 ‘붓다밴드’를 떠올리면서 수행은 깨달음을 향한 일직선의 길이 아니라, 둥근 원과 같아서, 언제 어디서든 재발심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붓다 초기 설법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니까야’ 낭송을 계속한다. ‘니까야’가 원래 문서가 아닌 소리 경전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나는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부처님과 소리로 공명하는 자리에서 다시 발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위로가 된다.
도주 우려가 없는 고령의 피의자에게 장시간 수갑을 채운 것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해당 경찰서장에게 소속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수갑 사용 관련 직무교육을 실시하도록 권고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사건은 진정인의 어머니 A씨가 다른 사람의 감나무밭을 지인의 밭으로 오인하고 들어가 감을 따다가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되면서 발생했다. A씨는 지인으로부터 “아는 감밭에서 감을 따도 된다”는 말을 듣고 가족과 함께 감을 땄다. 그러나 이들이 감을 딴 밭의 실제 소유주는 다른 사람이었고, 주인 부부가 항의했음에도 A씨 일행은 감 156개를 차량에 싣고 현장을 떠났다. 뒤늦게 감을 돌려주기 위해 돌아왔지만, 주인의 신고로 특수절도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체포 당시 경찰은 수갑을 채우지 않았으나, 파출소 도착 뒤 수갑을 착용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진정인은 “어머니가 고령이고 도주 위험도 없는데 과도한 조치를 했다”며 지난해 11월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경찰 측은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절차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전화 통화, 식수 제공, 화장실 이용 등 불편이 없도록 배려했고, 체포 약 1시간20분 후 수갑을 해제했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 피의자 도주 사례가 잦아 수갑 등 경찰장구 사용을 강화하라는 내부 지침이 있었고, 관내에서 단감 절도가 빈번해 관리가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권위 침해구제 제1위원회(위원장 김용원 상임위원)는 “피해자가 고령이고 현장에서 도주하거나 폭력성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장시간 수갑을 사용한 것은 범죄수사규칙과 경찰청 수갑 등 사용 지침에 반하는 행위로, 헌법상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봤다.
이어 “경찰관서 내에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수갑·포승 등은 원칙적으로 해제해야 한다”며 “자살·자해·도주·폭행 등 현저한 우려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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