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 카페 [사이월드] 지도상에서 소멸했는데···‘테러의 망령’, 여전히 전세계 ‘외로운 늑대’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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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이 비치 총격 사건 다음날, 시리아에서는 IS에 영향을 받은 병사가 미군 2명 등 미국인 3명을 살해했다. 그 다음날에는 폴란드 한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노린 폭탄 테러를 계획하던 법대생이 체포됐다. 두달 전인 지난 10월에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유대교 명절 욤키푸르(속죄일) 당일 유대교 회당을 겨냥한 차량 돌진 및 흉기 공격으로 2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들의 용의자 모두 이슬람국가(IS)와 관련성이 드러났다. 본다이 비치 테러 용의자 부자(父子)의 차량에서는 IS의 검은색 깃발이 발견됐으며, 22일 법원이 공개한 용의자들의 휴대전화 영상에는 IS 깃발 앞에 앉아 코란 구절을 낭송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폴란드 폭탄테러 모의범은 소셜미디어에 IS 관련 상징물을 공유했으며, IS와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맨체스터의 욤키푸르 테러의 범인은 범행 직후 긴급전화(999)로 전화를 걸어 IS에 충성을 맹세했다. 시리아 정부는 미군 살해 용의자가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을 지녔다며 IS와 연계 의혹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2019년 지도상에서 소멸한 IS는 세력이 크게 약화됐지만 지하 테러 네트워크와 온라인을 중심으로 극단주의 사상을 전파하며 세계 곳곳의 ‘외로운 늑대’를 대상으로 테러 행위를 선동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반복되는 유혈 사태는 IS가 ‘칼리프 국가’ 시대 이후 변화에 적응했음을 보여준다”며 “선전 활동을 강력한 도구 삼아 치명적 테러를 선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4년 시리아 내전의 혼란을 틈타 이라크·시리아 일대에서 칼리프 국가(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리는 종교 국가)를 수립했던 IS는 2015~2017년 전 세계에서 대규모 테러 공격을 자행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중동에서 납치, 성노예화, 공개 처형으로 악명을 떨쳤으며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로 130명이 숨지고, 2016년 3월 벨기에 브뤼셀 테러로 32명이 사망한 폭탄 테러 등 유럽 전역에서 테러 공격을 조직하거나 사주했다.
IS는 2017년 핵심 영토를 잃으며 기세가 꺾이기 시작해 2019년 시리아 바구즈의 최종 거점이 함락되며 지도상에서 소멸했다. 이후 IS는 아프리카 사헬 지역으로 거점을 옮겨 지하 테러 네트워크와 온라인을 중심으로 극단주의 사상을 전파하며 테러 선동을 주도하고 있다.
테러 활동을 추적하는 SITE인텔리전스그룹의 대표 리타 카츠는 “IS의 회복력은 유연함에 있으며, 새로운 현실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살아남고 있다”고 말했다.
약화된 세력에도 불구하고 IS는 여전히 세계 1위 테러 조직이다. 국제경제평화연구소(IEP)가 지난 3월 발표한 ‘2025 세계 테러리즘 지수’를 보면 IS는 세계 1위 테러 조직이며, 지난해 IS 테러로 22개국에서 1805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ISIS-K)는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에 난입, 총기 난사 및 방화로 149명을, 이란에서 폭탄 테러로 80명 이상을 사망케 했다.
서방 테러 용의자들은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접한 극단주의 사상에 빠져 단독으로 테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외로운 늑대’형 범죄가 많았다. IEP는 지난해 발생한 서방 국가 테러 용의자 5명 중 1명이 18세 미만이며, 특히 유럽에서 IS와 연계된 체포자 중 대부분이 10대였다고 밝혔다. 지난 5년간 서방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의 93%는 외로운 늑대형 테러범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IS의 정교한 미디어 운영 전략으로 ‘외로운 늑대’를 공략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발행되는 ‘알나바’(뉴스)라는 제목의 뉴스레터는 IS와 추종자들을 연결하는 핵심 수단이다. 텔레그램과 다크웹 등을 통해 유포되며 그 주에 발생한 공격 횟수와 사상자 수를 집계하며 추종자들에게 폭력 행위를 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IS는 또한 2023년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이용해 전 세계 유대인들에 대한 공격을 부추기고 있다. NYT는 호주 본다이 비치의 하누카 행사 테러, 영국 멘체스터의 욤키푸르 공격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이후 반유대주의 공격이 눈에 띠게 증가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IS는 지난 18일 알나바에 ‘시드니의 자긍심’이라는 성명을 싣고 본다이 비치 테러에 대해 “자긍심의 원천”이라며 “유대인들과 직접 맞설 기회를 갖지는 못했지만 지지자들과 동조자들이 전 세계에서 유대인들에게 대한 공격을 계속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이 시리아와 협력을 강화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시리아에 남아있는 IS 잔당 소탕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군은 지난 20일 IS 영향을 받은 시리아 보안군의 미군 살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시리아 중부 지역에 IS 거점으로 의심되는 70곳 이상을 공격했다. 미군은 지난 6개월간 IS 등 테러 조직원들을 무력화하기 위한 작전을 80건 이상 수행했다고 밝혔다. 앤드류 테블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공습 횟수가 IS의 영향력이 알려진 것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2001년 개봉했던 김대승 감독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었다. 주연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 비 오는 날 인우(이병헌)의 우산 속으로 파고든 태희(이은주), 쇼스타코비치를 배경음악 삼은 바닷가 왈츠 장면 등은 요즘 영화와 비교해도 촌스럽지 않다. 영화 속 동성애 코드도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마지막 대사는 이 영화만큼이나 생명력이 길다.
그런데, 기자에게는 <번지점프를 하다>가 영화보다 주제곡으로 먼저 각인됐다. 예고편의 배경음악으로 깔린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을 듣고, 이 영화는 꼭 극장에서 보리라 다짐했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 못지않은 가성으로 노래를 부른 이광조의 오리지널 버전을 좋아했는데, 영화 주제곡을 부른 김연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른 감흥을 줬다. 이 곡을 골라낼 정도의 선구안을 가진 감독 혹은 제작자가 만든 영화라면 일정 수준 이상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가수 본인도 애착이 컸는지, 이광조는 최근 발매된 새 앨범 <글로리 데이즈>(Glory Days)를 포함해 자신의 앨범에 몇차례 이 곡을 싣지만 첫 녹음의 소름 돋는 고음을 내지는 못한다.
이광조는 몇년 전 전주KBS의 <백투더뮤직>에 출연해 “지금은 그렇게 부르라면 못 부른다. 그때는 막 높은 데다가 묘했거든. 지금 이거를 이런 식으로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 때려죽여도 안 된다”고 했다.
서론이 길었던 건 이 아름다운 노래가 머리곡으로 실렸던 음반 <우리 노래 전시회>(1985)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다. 그룹 ‘들국화’의 최성원이 프로듀싱을 한 이 옴니버스 앨범에는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외에도 시대를 초월한 노래들이 빼곡하게 실렸다.
들국화로 데뷔하기 이전 전인권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엿볼 수 있는 ‘그것만이 내 세상’, 최성원의 ‘제발’, 시인과 촌장의 ‘비둘기에게’, 어떤날의 ‘너무 아쉬워 하지 마’, 강인원의 ‘매일 그대와’ 등. 작사가로 더 유명한 박주연이 직접 부른 ‘그댄 왠지 달라요’에서는 기교 없이 담백하고 고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1집만큼은 아니지만 2~4집에도 좋은 노래가 많이 담겼다. 1987년 발매된 2집에는 들국화의 ‘너의 작은 두 손엔’, 어떤날의 ‘그런 날에는’ 등이 실렸고, 3집(1988)에는 박학기의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 푸른하늘의 ‘그대 다시 오면’, 4집(1991)에는 동물원 김창기의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 등이 담겼다.
“노래라는 게 그렇다. 그 불가사의한 매력의 핵심을 쉽게 몇마디의 언어로 포착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 이 곡이어야만, 이 글이어야만, 무엇보다도 이 목소리여야만 가능한 어떤 기적 같은 음악의 순간이 있다.” 24일 세상을 떠난 음악평론가 김영대씨의 책 <더 송라이터스>에 있는 말이다. 이 음반을 들었을 때 기자도 이런 순간을 경험했던 것 같다.
명반의 조건 중 하나는 생명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에 실린 몇몇 노래들은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에 지금도 올라 있고, 몇몇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대다수 히트곡들이 반짝하고 잊히는 세상에서,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실제 당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했던 음반 참여 가수들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중요한 뮤지션들로 성장했다. 1집은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가 2007년 공동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72위에 올랐는데, 당연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이 음반들은 중고시장에서도 고가로 거래되는데, 음반 컬렉터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기자 역시 1집 LP와 1~3집을 묶은 CD 박스반을 어렵게 구했다.
<우리 노래 전시회>의 리부트 앨범이 40년 만에 나온다. 다음달 5일 LP로 발매되는 앨범에는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은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의 ‘생각은 자유’, 오연준의 ‘서귀포 돌고래’ 등 11곡이 담겼다고 한다. 제작사가 공개한 앨범 재킷 이미지가 1집을 연상케 해 더 좋았다. 1~4집에 이어 리부트 앨범을 프로듀싱한 최성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기회가 아니면 묻혀가는 좋은 노래와 훌륭한 뮤지션이 너무 많다. 보석 같은 친구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톱 가수들도 정규앨범을 좀처럼 내지 않는 음반 흉년의 시대에 귀한 시리즈의 귀환이 반갑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 절로 ‘픽’하고 웃음이 터지는 지점이 있다.
“꿈에 어떤 미인이 홀로 앉아서 손짓을 하는데, 나는 소매를 뿌리치고 응하지 않았다. 우스운 일이다.”(1594년 2월5일)
‘이순신과 여자’와 관련해서 한 두 군데 의심쩍은 일기가 보인다. 하나는 역시 꿈, 다른 하나는 현실 이야기다.
(꿈)“꿈에 부안 사람이 아들을 낳았는데, 달수를 계산했더니 낳을 달이 아니어서 꿈이지만 내쫓았다.”(1594년 8월2일)
(현실)“…저녁에 경상 좌수사(이운룡·1562~1610)와 작별 술잔을 나누고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介)와 함께….”(1596년 3월9일)
■이순신의 흉중
이 두 사례를 두고 ‘설’이 많다. 우선 꿈에 나타난 ‘부안사람(扶安人)’을 장군의 첩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순신의 ‘확실한 첩’은 서자 훈(1574~1624)을 낳은 해주 오씨 뿐이기 때문이다.
또 술에 취해 ‘함께 한 개(介與之共)’을 두고 “(여자 종인) 개와 함께 잤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함께(共)’를 ‘여자와 잤다’고 이해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순신 장군이 여색을 멀리했다는 정황 자료가 남아있다. 백사 이항복(1556~1618)은 “이순신은 7년간 군중에 있으면서 마음 고생하고 몸이 피로했으므로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통제사 이공 유사>)고 했다. 꿈에서도 미인의 유혹을 뿌리쳤을 정도로….
웬 객쩍은 소리냐 할 수도 있겠다. 지금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2026년 3월3일)을 열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기획자의 강조점이 ‘위기의 순간을 견디고 일어선 우리가 곧 이순신이다’라는 구호이다. 패배와 좌절, 압도적인 위기 앞에서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고뇌, 또 다시 일어서려는 결단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난중일기> 등에 담겨있는 ‘인간 이순신의 내면과 감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이중 필자는 인간 이순신의 ‘흉중(마음 속)을 날 것 그대로’ 써내려간 <난중일기>에 초점을 맞춰본다.
<난중일기>를 언급할 때 빼놓지 않은 소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순신의 ‘지독한 원균 뒷담화’이다.
“원균(1540~1597)의 술주정에 배 안의 모든 장병들이 놀라고 분개하니 고약스러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1593년 5월 14일)
“왜적을 토벌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더니 원균은 ‘술에 취해 정신이 없다’고 핑계대면서 대답이 없었다.”(1593년 6월11일)
“원균이 잔뜩 취해서 흉악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함부로 했다. 해괴 했다.”(1593년 8월 26일)
“원균이 온갖 계략으로 나를 모함하고… 뇌물 짐이 서울 길에 잇닿아 있다. 그렇게 나를 헐뜯으니…”(1597년 5월 8일)
■‘탈탈 털린’ 개인일기
그런데 <난중일기>를 읽다보면 원균 뿐 아니라 다른 장수들도 이순신에게 사정없이 욕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원수(권율·1537~1599)가 근거없이 망령되게 고한 일이 많았는데 그런데도 원수의 지위에 둘 수 있는 것인가. 괴이하다”(1595년 4월30일), “우수사(이억기·1561~1597)는 …헛소리를 많이 하며…”(3월24일), “경상수백(권준·1547~1611)이 모함하는 말을 거짓으로 꾸몄다.”(10월21일), “남해현령 기효근(1542~1597)은 어린 계집을 배에 태우고 남이 알까봐 두려워했다.”(1593년 5월30일)는 등….
이순신은 또 “체찰사(로 파견된) 이원익(1547~1634)의 계책이 얼마나 쓸모없냐. 우스운 일이다. 조정이 세운 계책이 어찌 이럴까”(1596년 2월28일)하고 개탄했다.
순변사 이일(1538~1601)은 이순신의 꿈에까지 나타나 장군에게 욕을 먹었다.
“꿈에 이일과 만나…‘당신은 국난을 맞아…배짱좋게 음란한 계집이나 끼고…비웃음을 사고 있으니 어떠냐’고 따졌다….”(1594년 11월25일)
그렇다면 이순신은 ‘모두까기’였을까.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난중일기>는 그날그날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담은 ‘개인일기’일 뿐이다.
다른 사람 보라고 다듬고 포장할 리 없다. 만일 400여 년 뒤 자신의 일기가 ‘탈탈 털린’ 이순신의 심정은 어땠을까. 개인정보가 저렇게 까발린 것에 한없는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반목은 반목, 협력은 협력…
다른 이들이야 그렇다 치고 이순신과 원균(1540~1597)은 유독 ‘견원지간’이었다.
그렇지만 왜군과의 전투에서는 내남이 있을 수 없었다. 이순신-원균 등과 이억기(전라 우수사·1561~1597) 등 3대장은 수시로 만나 작전회의를 했다.
이순신은 “영남 원수(원균)가 왜군 300여 명의 머리를 베어 죽였다”면서 “아주 기쁘다”고 자기일처럼 좋아했다.(1594년 1월24일)
3일 뒤인 27일자는 “원균 수사의 군관이 제주 판관의 편지와 말 장식, 해산물, 감귤, 유자 등을 보내왔다. 어머니께 보냈다”고 했다.
2월13일에는 “‘적선 출몰’ 보고를 받고 원균과 상의토록 했다”고도 했다. 또 1596년 윤8월22일에는 “(당시 불화와 갈등 때문에) 전라병사로 좌천(?)된 원균을 전라 병영(강진)에서 만나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꿈에 원균이 나타나…
또 칠천량 해전(1597년 7월15일)을 8일 앞두고 꾼 이순신의 ‘원균 꿈’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는 원균이었다. 쫓겨났던 이순신이 옥에서 겨우 나와 백의종군하던 때였다.
그때 이순신의 꿈에 원균이 나타났다.
“원공(원균)과 함께 있을 때 나(이순신)는 원공의 윗 자리에 앉아 음식상을 내올 때 원공이 즐거운 기색을 보이는 것 같았다.”(7월7일)
꿈이 맞다면 곧 다가올 칠천량 패전을 예감한 원균이 조선의 바다를 이순신에게 맡기고 기꺼이 전사했던 것이 아닐까.
꿈은 현실이 되었다. 16일 칠천량 패전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생각할수록 분하여 간담이 찢어지는 것 같다”면서 통곡했다. 이순신은 보름 뒤인 8월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하라”는 선조의 정식 교서를 받았다. .
■아픈 내색도 사치
또 하나 <난중일기>를 읽으면 이순신은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온통 나라 걱정 뿐이었다. <난중일기> 1593년 5월16일자는 “내가 몸이 아주 불편해 드러누워 끙끙 앓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프다는 내색은 사치였다.
“명나라군의 진격이 늦어지고 소식을 들었다. 나라 걱정이 많다…더욱 더 탄식이 일어나 펑펑 쏟아지는 눈물에 잠길 뿐이다.”
아무리 아파도 결코 진중을 비울 수 없었다. 게다가 동료 장수와 부하들과의 소통을 위해 술자리를 걸러서도 안되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조정에 올리는 보고서를 직접 써야 했고, 또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1594년 3월과, 1596년 2~5월 사이 이순신은 역병(전염병)에 걸려 몸상태가 최악이었다.
예컨대 1594년 3월6~25일 사이 “몸이 괴로워 앉고 눕기도 불편하며, 하루종일 무리가 무겁고 신음했다”는 등의 기사가 줄을 잇는다. 3월6일 이순신은 “몸이 몹시 괴로워 앉기도, 눕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쉴 수 없었다.
청슬(거제시 지석리)에 출몰한 적선 40여척을 불태웠다는 보고를 받고 역풍을 무릅쓰고 흉도(거제도)까지 가야 했다. 그때 명나라 장수 담종인이 통지문을 보내왔다. ‘명나라-일본 간 강화 협상에 방해가 되니 왜군을 공격하지 말라’는 문서였다.
억장이 무너지는 통지문이었다. 답서를 써야 했지만 병중의 이순신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부하들을 시켰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이순신 본인이 억지로 병든 몸을 이끌고 앉아 글을 썼다.(1594년 3월7일) 이순신은 답서에서 “왜적의 점거 지역은 모두 조선 땅인데 왜 공격하지 말라는 거냐”면서 “강화 하자는 것은 일본군의 속임과 거짓”이라고 우회적으로 거부했다.
병중에 발휘한 투혼의 답서라 할 수 있다.
이순신은 또 1596년 3~5월 무려 2개월 이상 끙끙 앓았다. 거의 매일같이 ‘땀이 온몸을 적시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곽란 때문에 구토했다’는 등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예컨대 “낮에는 땀이 옷에만 배더니 밤에는 두 겹이 다 젖고 다시 방바닥까지 흘렀다”(3월25일)고 했다. 습열 때문에 온몸에 침을 20여곳이나 맞기도 했다.(4월19일) 몸이 불편해서 하루에 두번이나 구토했다.(5월8일)
■20시간 근무, ‘몸 혹사’
그런 상황에서도 소통을 위한 술자리는 거를 수 없었다. 몸이 아파 땀이 줄줄 흐르고 있던 1596년 3월 5일의 술자리가 그랬다.
이날 이순신은 5경(새벽 3~5시) 무렵 배를 출발해서 동틀 무렵 우수사(이억기)가 복병하고 있던 견내량(거제대교 아래 해협)에 도착했다.
그는 이억기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사소한 오해를 푼 뒤 술자리를 마련했다. 이후 일찍부터 만취한 이순신이었지만 그냥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전라 우수영 우후(정4품) 이정충의 장막(꽃나무 아래)에 들러 이야기를 나눈 뒤 술에 취해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이순신은 몸을 추슬러 겨우 지휘부로 돌아왔다.
다시 부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삼경(밤 11~새벽 1시)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지금 시간으로 계산하면 하루 24시간 중 대략 20시간(새벽4~밤 12시)이다. 그 정도로 몸을 혹사했다.
■‘나라의 치욕을 씻으라’
진중과 배 안에서 그러한 극한상황을 버틴 이순신을 버티게 한 힘은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난중일기>에 녹아있는 이순신의 효심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 <난중일기>의 첫날(1592년 1월1일) 내용이 “어머니를 떠나 설 두 번을 쇠니 간절한 회안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아침에 흰 머리카락 10여 가닥을 뽑았다…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1593년 6월12일)
이순신은 어머니(초계 변씨·1515~1597)를 ‘천지(天只·하늘)’라 일컬었다. ‘어머니는 하늘(母也天只)’이라는 <시경>(‘용풍·백주’) 구절에서 따왔다.
“어머니 생신이다. 적을 토벌하는 일 때문에 찾아뵙고 장수를 기원하는 술 잔을 올릴 수 없다. 평생의 한이 되겠구나.”(1593년 5월4일)
1594년 1월11일의 일기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날 새배를 드리려고 찾아뵌 어머니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큰소리로 불렀더니 어머니가 놀라 깨어 일어났다. 깜짝 놀란 이순신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머니가) 숨이 곧 끊어지실 듯 해가 서산에 이른 듯 했다. 남몰래 눈물만 펑펑 흘릴 뿐이다.(只下隱淚)”
하지만 “적을 무찌를 일이 급해 오래 머물 수 없었다”고 했다. 겨우 하룻밤 어머니와 지낸 뒤 다음날 아침에 “돌아가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이때 어머니의 말씀이 심금을 울린다.
“잘 가라.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大雪國辱)”(1594년 1월12일)
이 대목에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선생(1862~1927)이 떠오른다.
조마리아 선생은 1910년 2월14일 아들이 사형언도를 받자 혹시나 항소할까봐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를 향한 효도”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과연 한국 역사의 두 불세출의 영웅을 낳은 어머니들은 뭔가 다르지 않은가.
■하늘이 무너졌다
이순신은 1596년 윤8월12일 노환으로 기력을 잃어가던 어머니를 뵈러 도착했다. 그때가 밤 10시였다.
“어머니는…숨이 곧 끊어질 듯 하루도 버티기 어려우신 듯…펑펑 쏟아지려는 눈물을 머금고 서로 부여잡았다. 밤새 위안하며 기쁘게 해드렸다.”
어머니 변씨는 이듬해인 1597년 4월13일 타계했다. 83살로 당시로서는 장수한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천지(天只), 곧 하늘(어머니)이 무너진 것이다. 마침 백의종군 길에 오르던 이순신이 잠시 아산에 머무르고 있던 때였다.
어머니의 안부를 물으려 갔던 사내종이 돌아와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전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이었다.
“어머니의 부음에 나는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슬퍼했다. 하늘의 해도 까맣게 변했다…서러움에 찢어지는 아픔 마음으로 다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금부도사에게 이끌려 길을 떠나야 했다.
“갈 시간이 되어 어머니의 신위에 인사를 올렸다. 목놓아 울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죽느니만도 못하다.”(4월19일)
■코피를 쏟은 이유
이순신은 막내아들 이면(1577~1597)을 가슴에 묻었다. 명량대첩(1597년 9월16일) 직후인 10월14일의 일이었다.
저녁 때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다. 느낌이 ‘싸’ 했다. 봉투를 채 뜯지도 않았는데, 뼈와 살이 먼저 떨렸다.
마음이 ‘아찔’ 하고 어지러웠다. 겉봉투를 와락 펼쳤더니 ‘통곡’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면이 전사한 것을 알았다. 간담이 떨어졌다. 목놓아 소리 높여 슬피 울부짖었다. 하늘은 어찌 이토록 모진가…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하늘이 정한 이치 아니더냐. 하늘과 땅이 깜깜하고 한낮의 해도 빛이 바랬다.”
하지만 부하들 앞에서 목놓아 울 수 없었다. 이순신은 “외딴 곳 소금 굽는 집에 가서 마음껏 큰소리로 서럽게 울부짖었다”고 토로했다.
아들 전사 후 5일이 지난 19일의 <난중일기>도 심금을 울린다.
“나는 죽은 아들이 그리워 통곡했다. 어두울 무렵 코피가 한 되 남짓 쏟아졌다. 그리움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와중에도 전투가 벌어졌다. 예컨대 이순신이 ‘소금 굽는 곳에서 통곡한 날’ <난중일기>는 “적의 머리 13급과 적에게 투항한 자(조선인)의 머리를 베어왔다”고 기록했다.
또 ‘죽은 아들이 그리워 서럽게 울었다’는 19일자 일기에는 “적에게 부역했던 2명을 잡아왔다”는 구절이 보인다. 전쟁의 비극이 이렇게 한 날짜의 일기에 적나라하게 투영되어 있다.
<난중일기>엔 부인(상주 방씨)에 대한 언급이 6번 정도 등장한다. 그러나 나라 걱정 때문에 절절한 그리움을 표할 수도 없음을 채찍질했다.
“아내의 병세가 아주 위중하다는 소식을 받았다…나랏일이 이러니 다른 일은 걱정도 할 수 없구나….”(1594년 8월30일)
그렇지만 이순신은 이날 밤새 뒤척였다. 결국 새벽에 점을 쳐서 불안을 달랬고, 그 결과 모든 점궤가 좋아 그제서야 안심했다.(9월1일)
■‘시인’ 이순신
<난중일기>에는 무인(武人)이 아니라 시인 이순신의 면모가 물씬 풍긴다.
그중 이동하는 장면을 두고 ‘지는 해를 탔다’(乘暮·1596년 4월13일), ‘어둠을 탔다’(乘昏·1597년 11월2일), ’석양을 탔다‘(乘夕·1592년 2월12일)는 등의 표현을 썼다. 특히 ‘참혹한 전쟁터의 모습’을 묘사한 뒤 ‘달을 타고 옮겨 정박했다’(乘月移泊·1598년 9월19일)은 구절은 어떠한가.
또 “일행이 꽃비(花雨)에 젖었다.”(1592년 2월23일)는 얼마나 공감각적인가. 이외에도 “온갖 시름이 가슴을 쳤다. 자려고 해도 잠들 수 없었다. 닭이 울 때야 풋잠이 들었다.”(1593년 5월13일)는 구절을 보라. 그 뿐인가. 같은 해 8월17일에는 “달빛은 낮과 같이 밝았다, 출렁이는 물빛은 하얀 비단 같았다. 마음을 가눌 수 없다.”고 했다. 1594년 5월9일에 읊은 시는 또 어떠한가.
“…빈 정자에 홀로 앉아 ‘가슴을 치는 백가지 생각’을 토로하며 ‘술에 취한 듯, 꿈 속인 듯 바보가 된 듯, 미친 듯’ 했다.”
구구절절 주옥같은 시어이다. 그렇지만 <난중일기>를 관통하는 구절은 따로 있다.
명랑해전을 하루 앞 둔 이순신의 결기에 찬 한마디….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한 사람이 좁은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 今我之謂矣)(1597년 9월15일)
인간 이순신의 삶을 집약한 이 한마디가 오늘의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그래서 이 어려운 때 우리는 외칠 수 있다. ‘우리가 이순신이다.’(2011년 8월11일 이후 14년 5개월 가량 진행한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칼럼이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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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식, ‘이순신의 진중생활에 관한 연구 2’, <이순신연구논총> 8권1호,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2007
장시광, ‘난중일기 속에 나타난 이순신의 일상인으로서의 면모’, <온지논총>20, 2008
국가유산청 현충사관리소, <충무공유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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